샴페인의 스틸 와인 버전, 꼬또 샹프누아에 대하여
테이블에 와인잔을 여러 개 두고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마시다 보면 간혹 샴페인의 버블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잔을 비우지 못할 때가 있다. 버블이 완전히 날아간 후 샴페인을 마셔 보면 그럼에도 샴페인 고유의 향과 맛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걸 느끼곤 한다. 그렇다면 샴페인을 만드는 동일한 포도로 처음부터 버블 없이, 스틸 와인(still wine)으로 만들면 어떨까? 꼬또 샹프누아(Coteaux Champenois) AOC로 실제로 그런 와인이 만들어진다.

꼬또 샹프누아는 샴페인이 생산되는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드는 스틸 와인이다. 샴페인에 허용되는 7가지 품종을 모두 사용하여 레드, 화이트, 로제 와인을 만들 수 있는데, 그 품종으로는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 아르반(Arbane), 쁘띠 메슬리에(Petit Meslier), 피노 블랑, 피노 그리가 해당한다. 물론 가장 많이 생산되는 건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이긴 하다. 레드 와인의 경우 대부분 적포도인 피노 누아나 피노 뫼니에를 단일 품종으로 사용하거나 블렌딩하여 만든다. 반면 화이트는 주로 청포도인 샤르도네를 사용하지만, 적도포인 피노 누아나 피노 뫼니에와 블렌딩하기도 하고 심지어 레드 품종으로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로제 꼬또 샹프누아의 주품종은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이다.
꼬또 샹프누아는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스틸 와인을 아우르는 AOC로, 1974년에 지정되었다. 사실 버블이 있는 샴페인이 탄생하기 전, 중세까지만 해도 샹파뉴 지역에서는 스틸 와인을 일반적으로 생산했다. 특히 피노 누아의 경우 경쟁상대가 부르고뉴였다고. 특히 아이(Ay)와 부지(Bouzy) 마을에서 생산된 피노 누아는 앙리 4세의 사랑을 받았을 정도로 품질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날 꼬또 샹프누아를 생산하는 건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는.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꼬또 샹프누아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와인이 아니다. 생산량 자체가 적기 때문인데, 샴페인 하우스마다 수백 병만 소량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샹파뉴 지역의 포도 수확량이 적은 편인 것도 있지만, 샴페인의 수요가 높기도 하고, 또 같은 포도로 샴페인을 만들면 수익성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근엔 과거보다 다양한 샴페인 하우스에서 꼬또 샹프누아를 생산하는 것 같다. 과거엔 포도가 완전히 익을 정도로 좋은 빈티지에만 스틸 와인을 만들 수 있었지만 최근엔 기후 변화로 과거보다 포도가 잘 익는 영향이 있는 듯하다.
꼬또 샹프누아는 레드 와인이 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애정이 있는 건 화이트 와인이다. 샹파뉴 지역에서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 와인의 캐릭터는 정말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샹파뉴의 서늘한 기후 덕분에 가볍고 드라이하며 산두가 높은 건 기본. 이외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미네랄리티가 있다. 사실 와인을 표현할 때 미네랄리티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꼬또 샹프누아라면 예외다. 와인의 언어에서 미네랄리티가 뭔지를 알고 싶다면 꼬또 샹프누아를 마셔보라고 얘기할 정도다. 백악질 토양이 연상되는 초키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보통 샤블리보다도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느껴진다. 부르고뉴 말고 좀 색다른 샤르도네를 마시고 싶다 할 때 좋은 대안이라 생각한다. 화이트 와인이더라도 피노 누아나 피노 뫼니에 등 레드 와인 품종과 블렌딩하는 경우도 많아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