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몽과 그 친구들을 만나보자!
얼마 전 스페인 백색돼지고기협회(INTERPORC)와 스페인무역진흥청(ICEX)이 협력하여, 주한 스페인 대사관 경제 상무부의 주관으로 하몽 세라노 오찬이 열렸습니다. 하몽 세라노 및 돼지고기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와 하몽 세라노 커팅 시연을 통해 스페인산 백색 돼지고기의 우수한 품질을 알리기 위한 자리였죠.

행사가 열린 곳은 스페인클럽 가로수길 본점인데요, 십수년 전 가로수길에 오픈한 이래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곳으로, 지난해 ‘Restaurant from Spain’ 인증을 받은 스페인 음식점입니다. 이는 스페인 무역진흥청에서 부여하는 공식 인증으로, 전 세계에서 진정한 스페인 요리의 품질과 문화적 정통성을 갖춘 레스토랑에만 수여한다고 합니다.

스페인 돈육하면 자연스레 이베리코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이베리코 하몽을 와인 안주로 자주 접하기도 하고, 이베리코 삼겹살이나 목살을 취급하는 고기집도 종종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날 선보인 요리들은 모두 털이 검정색인 이베리코가 아닌 백색 돼지고기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작년 기준 스페인은 한국에 3억 4,890만 달러의 돼지고기를 수출했는데, 이중 주요 품목은 이베리코가 아닌 백색 돼지고기였다 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이미 많이 스며들어 있다는 얘기죠.

하몽 세라노 오찬에서는 하몽뿐 아니라 백돼지 등심을 통째로 건조시켜 만든 로모(Lomo)라는 소시지도 나왔는데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처음보는 소시지라 생소했지만 와인 안주로도 아주 훌륭했는데요, 이 로모를 포함하여 하몽과 그 친구들의 종류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로 스페인식으로 발음하자면 ‘하몬’이 맞다는군요.

하몬 세라노(Jamon Serrano)
농장에서 곡물 사료를 먹고 자란 백색 돼지의 뒷다리를 염지한 후 건조 숙성한 생햄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스페인에서 가장 대중적인 편이죠. 슬라이스한 하몬 세라노는 타파스와 같은 캐주얼한 스페인 음식에 자주 활용됩니다. 숙성 기간도 이베리코 하몬보다 보통 짧은 편으로, 8개월에서 2년까지 숙성시킵니다. 없어서 못 먹는 하몬이지만, 저는 세라노의 지방맛과 질감이 좀 부담스럽더라고요. 아무래도 숙성 기간이 짧기 때문에 좀 더 생고기 같은 질감이 있고 곡물 사료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그 돼지 기름 맛이 확 올라올 때도 있죠. 그래서 저는 그냥 먹는 것보단 요리에 활용하는 것을 선호하는데요, 요리가 번거로울 땐 간단하게 후추 & 올리브 오일만 뿌려도 훌륭한 와인 안주가 된답니다.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Jamon Iberico de Bellota)
곱슬거리는 검은 털을 지닌 이베리코종 돼지의 뒷다리로 만들어집니다. 생육 기간 야외에서 방목하여 대부분을 지냈고 특히 도축 3~4개월 전부터는 데헤사(Dehesa)라 불리는 참나무숲에서 도토리를 먹고 자라야 합니다. 체중의 절반을 살찌우는 이 기간을 몬타네라(Montanera)라고 하는데요. 그 영향으로 곡물 사료를 먹고 자란 돼지들과 다르게, 완성된 베요타 하몬은 마블링 지방의 60% 이상이 모노 트리글리세라이드(mono triglycerides)로 구성됩니다. 올리브 오일과 동일한 건강한 지방이라고 해요. 씹을수록 고소한 견과류 맛이 나는 것도 도토리를 먹는 특별한 식이에서 기인했다 할 수 있습니다. 베요타 하몬의 라벨에서는 ‘jamon 100% iberico de bellota’와 같이 ‘%’를 볼 수 있을 텐데요. 100%면 이베리코 순종이고, 교배종(잡종) 비율에 따라 75%, 50%까지 있습니다. 모든 하몬 중 베요타가 가장 고급으로, 특히 순종 비율 100% 제품이 최상품이라 합니다. 숙성 기간이 최소 36개월로 길어 가장 공들여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그만큼 가격대가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먹어보면 수긍이 가는 맛입니다.
하몬 이베리코 세보 데 캄포(Jamon Iberico Cebo de Campo)
라벨에 ‘캄포(Campo)’가 붙으면 곡물 사료와 도토리를 혼합해서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베요타와 동일하게 이베리코 순종 비율에 따라 100%, 75%, 50%로 라벨에 명시되죠. 최소 24개월을 숙성해야 하며 36개월까지 숙성하기도 합니다.
하몬 이베리코 세보(Jamon Iberico Cebo)
농장에서 곡물 사료만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의 뒷다리 생햄입니다. 심플하게 ‘하몬 이베리코(Jamon Iberico)’라고 불리기도 하죠. 역시 이베리코 순종 비율에 따라 100%, 75%, 50%로 나뉩니다. 숙성 기간은 12개월~24개월로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덕분에 부담이 덜한 가격으로 이베리코 햄을 즐길 수 있죠.

기타 스페인의 육가공품들
하몽 이외에도 유럽 여느 나라들처럼 스페인에서도 돼지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가공품을 생산합니다. 이베리코종 혹은 백색 돼지종으로도 만들 수도 있죠. 앞서 소개한 로모는 분쇄육이 아닌 돼지 등심살을 통채로 염장 숙성시켜 등심의 질감을 살린 소시지입니다. 초리소(Chorizo)는 분쇄 돼지고기에 훈제 파프리카와 마늘을 넣고 발효와 숙성, 건조를 통해 완성된 소시지입니다. 붉은색에서 느껴지는 매콤함과 미묘한 새콤함이 입맛을 돋우죠. 그냥 슬라이스하여 술 안주로 먹기에도 좋으며, 요리에 활용하면 특유의 풍미가 조미료가 되어 줍니다. 살치촌(Salchichon)은 살라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을 포함한 분쇄육을 후추와 같은 향신료와 함께 믹스하여 훈연, 염장, 건조 숙성하여 만듭니다. 보통 초리소보다는 자극적인 맛이 덜하지만, 저는 먹을수록 땡기는 지방 맛과 하나씩 씹히는 통후추가 매력적이더라고요. 카탈루냐(Cataluna)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지는 푸엣(Fuet)은 살치촌과 비슷하지만 폭이 좁고 긴 소시지입니다. 흰 곰팡이에 덮혀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죠. 염장 건조 숙성하지 않은 버전의 살치촌도 있는데 카탈루내 지역에서 만드는 부티파라(Burifarra)입니다. 건조하지 않았으니 일반 소시지처럼 부드러운 질감일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꼭 먹어보고 싶군요.

와인 페어링은
하몽과 같은 생햄류나 소시지는 레드 와인과는 웬만하면 다 잘 어울린답니다. 베요타와 같은 고급 이베리코 하몽은 특히 드라이 셰리에 곁들이면 아주 좋습니다. 효모향과 견과류 향이 감도는 드라이 셰리와 고소한 하몽의 조합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또한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도 하몽의 좋은 파트너입니다. 향신료를 강하게 사용한 건조 소시지류는 어떨까요? 매콤한 초리소는 맥주나 증류주와, 입 안에서 후추가 하나씩 터지는 살치촌은 스파이시한 가르나차와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